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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생태텃밭 이야기: 가뭄이 해소된 뒤(기억과 공간 스터디)
글쓴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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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7-05 23:41:00



지독한 가뭄은 이웃도 원수가 된다는 걸 실감하며, 한창 자라야 할 옥수수가 스스로 잎을 말며 조금이라도 수분 증발을 막아 가뭄을 이기고자 뙤약볕 아래 묵묵히 견디는 모습을 보니 나도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걸어만 다녀도 흙먼지가 팡팡 나고 한 달 전 심은 작물들이 크지도 못하고 그대로 하얗게 말라간다.

죽은 아이들을 보식하려 해도 산 아이들도 물 못 주는 상황이라 살릴 수 있는 아이들만 살려 사주 마음을 접는다. 가장 약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내치거나 일부러 먹이를 안 주는 어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길 건너 밭 귤나무들도 잎을 말고 있는 걸 보니 가뭄은 우리 텃밭만이 아닌 모든 땅에 고통을 주고 있다. 어서 비님이 오시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밭은 넓고 사람은 많고 호스 줄 네 개에 의지해 밤늦게 이른 새벽에 물주기 전쟁에 나섰다. 양보와 배려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나 크고 작은 다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가뭄 앞에서 사람들은 이기주의자이다가 이타주의자이다 했다.

옆 사람의 인내심이 아쉽다가 때론 화가 나다 다른 이들의 협력과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다 하며 약한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텃밭에 드러났다. 어느 날은 호스 줄을 두고 고성이 오가고, 아픈 아이 때문에 내버려둔 남의 텃밭을 조용히 돌봐주는 이도 있고, 수눌음으로 힘을 모아 물을 주는 이들도 있고.

비다, !”

고대하던 비님이 오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새벽비를 맞으며 달려간 텃밭에는 웅크렸던 잎을 손가락 끝까지 쭉 피고 가슴 피고 온 몸으로 비를 받아들이는 애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 있다. 잘 견딘 작물들도 대견했다.

가뭄이 끝나고 열무 솎기작업을 했다. 자연농 방식으로 지지난주 직파한 열무는 가물어서인지 손가락 정도밖에 크질 못하고, 밑비료 없이 뿌리기만 한 씨앗이라 약간 질소질이 모자라 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가와나 히데오의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에서 자연 재배의 개념과 필요성을 설명한다. 푸르지 않은 진짜 채소를 먹는 일이야 말로 내 몸을 살리고 자연의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라는 게다.

생태텃밭에서 작게 시도하는 자연농법은 아주 감동스러운 시간을 선사해줬다. 우리는 몇 개 안 되는 썩지 않고 시드는 채소를 소중히 두 손에 들고 자연에 인사를 올렸다. 한번 국거리밖에 안 되는 양이지만 첫 수확은 참으로 뿌듯했다.

바로 옆 이랑에는 밑거름으로 퇴비를 넣고 왕겨도 넣은 오연숙 방식으로 기른 열무가 자연농의 두 배 이상으로 잘 자라 있었다. 이 큰 아이를 작은 아이와 비교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원래는 영양제와 추비를 주는 날이었으나 자연농에 비해 오연숙 농법의 열무가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검질만 매기로 했다.

생산성의 논리로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키워 푸르고 크고 매끈한 채소가 오히려 우리를 건강하지 못하게 함을 깨닫는다. 퇴비를 넣은 땅에 땀 흘려 가꾸며 여럿이 마음과 웃음을 나누며 기른 텃밭채소는 못생기고 작지만 진짜 채소이다. 자연의 맛과 기운을 담고 있다. 생태텃밭은 참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가뭄은 이웃 간에 오해와 미움을 낳는 나쁜 것도 가져 왔지만, 우리가 자연에 순응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서로 협력해서 난관을 넘는 법을 배우게 하는 좋은 것도 가져 왔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귀 기울이는 낮은 자세를 가르치는 이곳에 수확의 시기가 다가온다. 7월은 풍성한 나눔의 시기가 될 것이다.

-오연숙(친환경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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